2024년 9월 13일 지휘자서신
<그 사랑 이제 난 알았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요한1서 4:9-11)
성경 퀴즈를 내겠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이것은 성경의 어느 장면에 나올까요? 여러분도 잘 아시는 대로 칼을 들고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려고 했을 때 하나님께서 급히 아브라함을 막으시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놀라고 다급해하시는 장면이 또 있을까요?
두 번째 퀴즈입니다. “엘리 엘리!” 이 외침은 또 어떤 장면에서 나온 것일까요?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 너무 익숙한 외침 아닙니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통 중에 하나님을 향하여 울부짖는 외침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말씀은 모두 기력이 없어 보이는 것들인데 이 말씀 만큼은 남은 힘을 모두 짜내어 외치는 듯 합니다.
이 두 말씀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상황이 너무나도 급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을 두 번씩이나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또 절체절명의 순간이라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두 말씀은 상반된 점도 있습니다. 먼저, 외치는 방향이 다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향해, 즉 하늘에서 땅을 향해 외치신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을 향해, 즉 땅에서 하늘을 향해 외친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을 위해서는 서두르셨던 하나님이 예수님의 외침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받으실 고난을 모두 통과하게 하셨고, 심지어 죽음까지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말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요한1서 4:9)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로마서 8:32).
이 사랑은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보고 들은 모든 사람이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복음은 신비입니다. 사람의 마음과 머리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그것이 너무 구구절절이 믿어지니 신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알게 된 것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어느 명성 있는 신학자가 은퇴를 앞두고 신문기자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신문기자가 이런 질문을 합니다: “오랜 세월 신학을 연구하면서 얻은 가장 큰 발견이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대한 노교수의 대답이 싱겁습니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노교수는 평생을 하나님을 연구하고 설교하고 가르쳤던 사람입니다. 신문기자는 아마도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깊이 있는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극히 개인적인 대답을 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고 신비로운 것인지를 알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참으로 겸손하고 솔직한 대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표현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았고 이제 그 신비를 알아가기 시작한 사람들” 입니다. 이제 알아가기 시작했기에 듣고 또 들어도 새롭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있을 때마다 그 깊이와 높이에 감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뜨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축하받을 일입니다. 우리가 이번 주일에 부르는 찬양이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그의 사랑 난 알았네 고요함 속에 깃든 비밀을.” 고요히 다가오는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사랑을 알게 되신 여러분에게 축하드립니다.
지휘자 김동근,